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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이앤 노영훈 대표(사회복지사) |
겨울이 다시 오겠다고 작별 인사하는 요즘. 자연의 시간는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현재는 금새 과거가 되고 미래는 곧 현재가 된다. 적어도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그렇다. 하지만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던 시대가 있었듯이 오류를 여전히 진실로 여겨지는 것도 있지 않을까? 인간의 기억 그리고 착각. 내 오류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만두이다. 요즘은 흔하지만 유년시절엔 귀했다. 추석과 설날. 차례를 지낼 때만 등장했으니 만두는 귀한 음식이었다. 만두를 준비하는 어머니는 마법사였다. 내 키만한 홍두깨. 넓은 흰 달력 여러 장. 마법의 밀가루. 아버지 밥그릇 뚜껑. 그리고 나와 여동생 두 명이 조수였다.
아버지는 신기하게 만두 만들 때는 사라 지셨고 만들고 나면 나타나셨다. 그런 현상도 마법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양동이에 밀가루와 물을 붓고 반죽을 시작하시는 어머니.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밀가루는 눈사람 얼굴 모양의 덩어리로 변했고 조수 3명은 그저 지켜봤다. “홍두깨 가져 온나” 어머니의 명령. 커다란 달력을 뒤로 뒤집어서 그 위에 밀가루를 뿌린 후 홍두깨 반죽이 시작된다. 구경하는 것도 인내가 필요했다.
어렵게 덩어리를 만드시더니 홍두깨로 납작하게 만들고, 또다시 덩어리로 만들기를 몇 번 반복하셨다. 드디어 달력 여러장을 꽉 채운 둥그렇고 얇은 반죽이 완성되었다. “만두 속 들고 온나. 무거우니까 같이 들고.” 드디어 어머니를 따라 만두 빚기가 시작된다. 어머니는 꼭 아버지 밥뚜껑으로 만두피를 찍어내셨다. 만두소는 만두 만드는 날 새벽에 항상 미리 만들어 놓으셨다. 시간을 뒤돌려 그날 새벽. “엄마 왜 낮에 안 만들고 꼭두새벽에 만들어?” “자지 뭐하러 일났나...새벽에 만들어야 싱싱하지. 만두속이 상하믄 우타하나!”
어린 나는 만두 만드는 새벽이면 어머니가 혼자 일하는 걸 알았다. 요즘처럼 부엌의 조명이 밝은 것도 아니었고 백열등 하나가 전부였던 그 시절. 뭔가 도와드리고 싶기도 했고, 만두속을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했으니 자동으로 일어났다.
어머니는 마법사! 엄청난 속도로 여러 가지 재료를 삶으셨다. 당면, 부추, 시금치, 두부, 김치, 숙주나물, 기타 재료들을 따로따로 삶고 커다란 양동이에 넣고 비비셨다. 마지막으로 구운 김가루를 넣으면 만두소의 완성이었다. 고된 작업 중 하나는 할머니 약다리던 삼베보자기에 김치를 넣어서 짜는 일을 어머니가 가장 힘들어 하셨다.
세월은 흘렀고 이런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것은 불과 한 달도 안된 어느날. 동생네와 의기투합(意氣投合)! 만두를 만들어서 부모님들께 보내드리는 미션 도전. 기억을 더듬어서 모든 재주를 발휘해본다. 만두소도 비슷하게 만들어 진 것 같았고 저마다 호기로운 표정이다. 드디어 한입! 그런데 맛이 다르다. 어머니 만두 맛이 아니었다. 동생도 나도 문제점을 찾느라 갸우뚱. 다 먹고 난 후에야 동생이 알아낸다.
“오빠! 김 빠졌다” 그랬다. 이것저것 넣고 어머니의 솜씨를 물려받은 마냥 자축하며 만두소를 만들었지만 마지막에 어머니의 비법 구운 김가루! 그것이 안 들어갔고 맛은 완전히 달랐다. 패잔병처럼 조금 남은 만두소에 구운 김가루를 넣어서 만들어 보니. 그제서야 어머니 맛이다. 귀가한 후 동생과 통화했다. “우린 아직 멀었다!” 주변에서 사 먹거나 얻어먹었던 만두소에 김가루가 들어가 있는 것이 흔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일까? 엄마표 손만두는 더 특별했다. 어떻게 김을 넣을 생각을 하셨을까? 영양 덩어리 만두. 김은 우리몸에 어떤 효능이 있을까?
자료를 보면 구운 김은 혈관질환을 예방하고 칼슘이 풍부하여 골다공증 예방에도 탁월하다고 한다. 특히 해조류에는 알긴산이라는 식물성 섬유가 있어서 변비를 완화시켜 준다. 그밖에 단백질, 칼륨, 요오드등의 무기질 성분이 풍부하다. 식물성 섬유질이니 칼로리가 거의 없어서 다이어트에도 좋다. 비타민 A성분은 망막을 보호하고 시력보호에도 효과적이라고 하니 영양 만점 식재료가 틀림없다.
만두소 만드는 경험만으로도 기억에 대한 신뢰. 그것에 대한 착각. 오류를 반복해가는 더없이 부족한 나 자신임을 깨닫게 된다. 흩어질 듯 뭉쳐온 가족들의 삶을 닮은 어머니의 만두소.
부모님을 대신한 동생의 외침인가! “오빠 김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