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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훈의 자상어보] 삼남매와 호박

북평장날 풍경이 그립습니다
(주)이앤 노영훈 대표(사회복지사)
5일장이 서는 곳. 강원도 동해시 북평. 날짜의 끝자리가 3이나 8이면 동네는 인산인해(人山人海)가 된다. 장이 서기전 거리엔 동네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장이 서게 되기 전날 저녁부터 거리는 달라지기 시작한다. 약속이나 한 듯 질서 있게 만들어지는 장터. 기껏해야 도로 옆 한 두줄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북평동이라는 시내 전체가 장터로 뒤바뀐다. 못봤던 사람들로 붐빈다. 유년시절 백투더 퓨처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 북평 장터에도 미래에서 온 사람들이 있을 거란 확신을 가질 정도였다. 송아지와 소 수십마리가 나타났던 쇠전(우시장), 몇 번을 실어날랐을 양의 마르지 않은 흙이 묻어있는 채소류, 채소전, 조선시대 갓쓴 사람들이 나타날 것 같은 천과 옷을 팔던 강포전(삼베, 옷), 수족관 대신 빨간 고무대야에 담겨 살아있는 생선이 즐비했던 어물전, 도시에서 왔을 것 같은 물건들이 있었던 잡화전. 애들은 구경하지 못하게 했던 약장수 아저씨들터. 5일마다 마법에 걸리는 동네. 그곳이 북평이었다. 

나의 본가는 지금도 채소전이 열리는 곳. 마법의 기차를 타고 중학교 2학년 시절로 가본다. 집과 텃밭이 함께있는 시골 집. 휴일이라 아버지는 밭에 계신다. 농사를 전문적으로 짓는 기술이 없다고 하셨지만 밭에서는 항상 뭔가 다른 작물들이 자라나고 없어지곤 했다. 

자꾸 넓어지는 텃밭 150평 안되는 곳에 감자, 고구마, 대파, 당근, 옥수수, 깻잎, 상추, 딸기, 포도, 부추, 쪽파, 배추, 무, 오이, 호박, 고추등을 계절별로 재배하셨고 우리 가족은 텃밭에서 생산된 것으로 자급자족(自給自足)했다. 텃밭 때문에 아침이면 삼남매가 하는일이 있었다. 

농사짓는 것 만큼 수확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얘기가 있지! ” 아버지의 말씀으로 우리는 텃밭으로 향한다. “ 너희들이 먹을 만큼만 고추를 따와라” 부모님것은 큰 것, 매운 것으로 땃고, 나는 새끼 손가락 만한 덜자란 것으로 따오곤 했다. 

어른들은 큰 것을 먹고 애들은 작은 것을 먹는줄 알았다. 한번은 부추를 뿌리째 뽑아와서 “부추를 뿌리째 뽑아오는 놈이 어디있나. 뿌리를 남겨둬야 또 자라지!” 아직도 부추만 보면 뽑았던 부추를 다시 심으러 갔던 일이 생각난다. 장이 섰던 어느날. 특별한 명령이 삼남매에게 떨어졌다. 청천벽력(靑天霹靂)! 

“ 밭에가서 호박을 따서 장에가서 팔아 오도록!” “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얘기 들어봤지!” 우리 삼남매는 단 한번도 물건을 팔아본적이 없었다. 셋은 대문앞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밭에서 따온 호박 들을 올려놨다. 꿀먹은 벙어리로 나란히 벌을 서는 듯한 자세! 우리는 한동안 그렇게 말없이 서 있었다.

 “ 호박가져온나 우리가 팔아줄테이 끼니” 우리 삼남매로 인해 채소전 웃음꽃이 피었고 우리셋은 도망치듯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날 삼남매는 결국 호박을 하나도 못 팔았다. 공부가 제일 편하다는 것을 짧은 순간 알게 되는 사건이었고 그날 매우 열심히 공부만 했다. 

우리집은 아침에 주로 호박찌개를 많이 먹었는데 호박 따오는 것은 내 몫이었다. 정글을 헤매듯 넝쿨을 요리조리 살펴야 했고,너무 익은 것을 따도 덜익은 것을 따도 난감했다. 부추는 뽑아와도 다시 심으면 그만이지만 호박은 따버리면 붙 일수가 없었으니 나에겐 애물단지였다. 

텃밭의 보물. 호박의 효능이 궁금하지 않을 수없다. 호박은 인슐린분비와 촉진을 돕고 당뇨 환자들에게 좋다. 해독작용과 이뇨작용도 탁월하다. 베타카로틴도 풍부하게 들어있고 폐암 위암, 방광암, 식도암, 전립선암, 유방암 등 다양한 암을 예방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채소다. 

또한 불포화 지방산이 만든 산화물이 쌓이는 것을 막아주고 지질 단백질의 혈전 형성을 방지해주는 역할도 한다고 한다. 그 외 소화흡수, 피부미용에도 좋아서 노화방지 와 윤기 탄력이 있는 피부를 유지하는데도 도움을 준다. 북평장터 채소전에 있는 나의 본가. 설에 고향집의 텃밭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큰병없이 살아온 것은 텃밭이 준 선물이었다. 도시에서도 채소는 있지만 밭에서 금방 수확해서 먹는 것과 어찌 같으랴. 아버지 어머니가 편찮으시면 당연히 내가 모시고 도시로 올라와야 한다. 그러나 텃밭이 주는 갖가지 선물이 있는 한 부모님의 건강은 도시보다는 시골이 더 안전하다. 

1796년 (정조 20년)부터 있었다는 내고향 북평장터. 마법의 기차 차창너머로 호박파는 삼남매가 멀뚱히 서있고 씨끌벅적한 정이 오가는 채소전 사이로 아버지 어머니가 웃고계신다. “ 호박 한 개도 못팔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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