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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이앤 노영훈 대표(사회복지사) |
12월이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은 아쉬움과 희망이 공존한다. 점점 더 추워지는 날씨는 몸과 마음을 정돈하라는 메시지. 그리고 떠오르는 입맛의 기억! 고향집 대봉의 맛이다. 그 소중한 맛을 누리기 위해 애절했던 수확의 현장이 떠오른다.
“감나무는 함부로 올라가는 게 아니다!”
어릴 때 아버지께서 늘 하던 말씀. 왜 그래야 하는지 불만이면서 올라가기 두려웠던 감나무. 올라가면 겁나고 감은 따야 하니 잘 말린 긴 대나무를 준비한다.
언제나 시작은 아버지의 몫이다. 긴 장대 끝을 낫으로 정리한다. 감을 따는 게 아니라 감나무 가지를 꺾어 따는 방식이다. 장대 끝이 너무 벌어지면 가지가 빠져나가면서 감이 손상되니 단단한 도구여야 했다. 누가 들으면 과수원집 아들인가 싶겠지만 작은 마당이 있는 집이면 감나무가 한두 그루씩은 있었다.
“감 딸 때가 지났는데 나무에 많이 남아있으면 게으른 집이고, 감을 다 따버리면 인정머리가 없는 집이지. 옛날 어른들이 그랬지.”
감 딸 때마다 들었던 아버지의 말씀이다. 하늘을 쳐다보며 독백을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서커스 그 자체였다. 감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하긴 위한 몸부림. 장대로 정확히 조준을 하지않을 경우 멀쩡한 감을 찔러 손상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감따기 전쟁은 하루 이틀로 끝나지 않았다. 가지치기를 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 있었던 감나무였기 때문에 감의 개수도 적지 않았다.
저녁 무렵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많이 땄소? 아이고. 감이 게락이네”
어머니다. 게락은 강원도 사투리로 홍수를 뜻한다. 이웃에서 얻어온 짚꾸러미와 커다란 쇠드럼통 2개가 창고에서 기다리고 있다. 상처 날까 조심조심. 원통 안에 한 줄씩 감을 넣고 그 위에 볏짚을 깔고 한층 또 한층 반복해서 가득 채운다.
어머니는 보관의 달인. 집 밖 마당 옆에 있는 창고는 다음 해 쓰일 곡물도 있는 천연보관소다. 쥐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우리 집 고양이 나비를 특급 파견시키기도 했다. 나무에 달려 있는 감만 먹는 것은 나의 몫이고 저장된 홍시는 특별한 분들의 것이었다.
12월이 지나고 새해가 되면 ‘에미야! 에미있나’라고 부르며 어머니를 찾는 동네 어르신들의 호출소리가 들리고 한 두달 전에 보관해오던 홍시가 보이기 시작한다. 무슨 이유인지 어머니는 드럼통 안 감 심부름을 나에게 시키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드럼통 뚜껑을 자주 열면 안 된다고 하셨다.
두 분의 가르침이 일치한 것은 우연일까?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드럼통 뚜껑을 열어본다. 지푸라기 위아래로 숨어 있다가 살얼음이 낀 채로 상처 없이 등장한 홍시! 내가 가을에 봤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겉은 완전히 익었는데 물러 터지거나 상처가 없다. 밖에 놔둔 것들은 상처가 생기면서 익는데 이것은 다르다. 꽝광 얼어버린 것도 아니고 수저로 떠먹으면 아이스크림이 필요 없다.
동네 어르신들은 우리 집 감을 좋아하셨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오시는 분들을 위해 드럼통에 감을 애지중지 보관하셨던 것이다. 홍시에 함유된 영양소는 대단하다. 베타카로틴 성분이 암의 원인인 활성 산소를 제거하며, 베툴린산은 항종양 효과가 입증된 성분으로 암 세포의 크기를 줄여주고 암의 전이를 막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한 피로회복과 우리 몸의 횔력을 도와주는데 효과적이다. 또 겨울철에 부족한 비타민이 다량 함유되어 있고 콜라겐 생성을 촉진하고 멜라닌이 피부에 침착하는 것을 방지하여 깨끗한 피부를 갖도록 도움을 준다. 어르신들에겐 너무나 좋은 최고의 겨울 보양식 중 하나였던 것이다.
얼마 전 허리 아픈 아버지께서 보내신 감 한 박스. 지인들과 함께 나누었다. 고생해서 딴 감이라며 받는 이들도 고마워한다.
감 맛을 봤으니 내년에 같이 따러 가야 할지도... 그러다 불현 듯 어쩌면 최상의 감이 어딘가에 숨겨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창가에 둔 감이 빨개질수록 내 얼굴빛도 같다.
부모님의 메시지다.
“감감무소식이 뭔 줄 아나? 내년엔 니가 따라! 감!”
감 잡았다.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