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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장기요양기관시설협회 전한욱 회장 |
천마산 자락 고즈넉한 산사를 찾았다. 진달래는 이미 만개해 산바람에 흔들리며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적송의 몸통 빛도 더 붉어지고 있었다.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의 움츠린 표정들과 대조를 이뤘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사찰 인근까지 아파트가 들어서 사람의 숨고르기처럼 잠시 소음이 차단된 느낌 가득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18호 불교 의식집(佛敎 儀式集) 조상경 (造像經)과 제219호 조선시대 불경 현수제승법수(賢首諸乘法數)를 품고 있는 수진사 주변 풍경이다. 수진사에서 운영하는 수진사 자비원을 찾았다. 수진사 자비원은 2013년 지정받아 57명의 어르신과 36명의 종사자가 공존하는 곳이다.
수진사 자비원 시설장은 전한욱 원장이다. 전한욱 원장은 남양주장기요양기관시설협회 수장이다. 회원시설이 약 100개에 이른다. 본지는 '장기요양의 미래를 바꾸는 사람들' 코너에 전한욱 회장의 망원경을 통해 노인장기요양의 미래상을 들여다봤다.
Q. 장기요양기관의 무게감은?
A. 노인복지의 핵심은 '가족'이다. 가족을 부양해온 노인이 이제는 부양 대상이 되어 가족 공동체 안에서 삶을 마무리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러나 치매 등 노인성질환은 가족 부담을 극대화시켜 결국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된 만큼, 시설과 재가 서비스를 통해 노인의 존엄한 노후를 장기요양기관 전문성에 맡겨져 있다. 따라서 가족과 기관이 연대감을 갖고 최대 봉사의 원칙을 공유해야 한다.
Q. 장기요양시대, 가족의 역할과 당부는?
A. 노인부양의 무게중심이 가족에서 사회연대책임으로 이동했다. 초기 요양원 입소를 두고 신 고려장 등으로 묘사됐지만, 치매 노인에 대한 전문성을 보유한 가족이 거의 없는 만큼, 장기요양기관의 역할이 커졌다. 아동기와 달리 노인세대의 특징은 인지기능과 신체기능이 점점 떨어지는 것이다. 결국 노화와 죽음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 시설 서비스와 어르신 상태를 균형 있게 살펴야한다. 떨어진 기능과 신체변화를 노인학대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억울한 일 아닌가?
Q. 선진사례 중 인상 깊은 곳은?
A. 네덜란드 호그벡(Hogeweyk) 마을은 그 자체가 요양원이다. 유니폼을 없애고 종사자와 입소자 간의 벽을 낮췄다. 직원과 입소자간 비율이 거의 1:1이며, 입소자는 170명 내외다. 치매 또는 노인성 질환의 중증도에 따라 서비스와 비용은 차별 적용된다. 언론에 비친 모습은 치매노인들의 일상생활이다. 평화롭고, 치매 공포를 잠시 잊게 한다. 여러 가지로 좋아 보인다. 그러나 언론이 보여주지 않는 것은 중증 어르신이다. 와상, 정신질환, 중증치매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나라 수준도 상당한데 '후진사례'로 저평가 받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다.
Q. 가칭 '남양주 호그백마을'을 꿈꾼다면
A. 어르신은 치매(노인성질환) 전후 단계와 진행정도에 따라 다른 만큼, 경증부터 환자까지 돌보는 노인복지 복합타운을 생각해본다. 일반 노인복지주택(실버타운), 방문요양, 주야간보호센터, 요양원, 요양병원이 기본 서비스 체계를 구성하고, 종사자 자녀를 위한 어린이집, 어르신들이 자유롭게 쇼핑할 수 있는 쇼핑센터, 수영장, 산책코스, 미니 식물원, 커피숍이 들어서있는 타운이다. 요양원 종사자비율은 기본인력배치기준보다 강화해 2:1 이하로 구성하고, 전문 자원봉사단을 구성해 부족한 일손을 채운다면, 네덜란드 호그백 마을에 비견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장기요양통계연보에 따르면, 2019년도 12월 말 기준 노인장기요양보험 인정자는 77만 2천 명이다. 국가자격증 취득 종사자 수는 492,132명으로 2020년 통계에는 이미 50만 명이 넘어섰을 것이다. "언제까지 선진국을 부러워할 것인가. 지자체 단위 작은 실험을 통해 우리 스스로 선진 모델을 제시해야한다"는 전한욱 회장의 말에 "장기요양 50만 대군이 못할 일일까"라고 고개를 끄덕일 즈음 산사의 풍경이 고요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