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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양시설 어르신과 로봇간 교감 장면(이미지=AI) |
정부가 초고령사회 대응 카드로 인공지능(AI)과 돌봄로봇을 앞세우고 있지만, 정작 장기요양 현장에서 이들 기술을 실제로 들여놓은 기관은 손에 꼽을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은 디지털 돌봄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살 돈이 없고, 수가에 반영되지 않으며, 사고가 났을 때 누가 책임지는지가 불분명하다는 세 가지 벽 앞에서 도입을 망설이고 있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최근 펴낸 「성평등 사회 실현을 위한 사회서비스 혁신 전략 연구(Ⅱ): 디지털 기술 기반 사회서비스 전략 연구」(연구책임 오은진, 2025)는 장기요양기관과 요양보호사 등 서비스 제공인력을 대상으로 디지털 돌봄기술의 인지·도입·활용 실태를 폭넓게 조사했다. 그 결과를 요약하면, 우리 돌봄 현장의 디지털 전환은 여전히 ‘시범사업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도입률 시설 11%, 재가 3.3%… 여전히 시범사업 수준
보고서에 따르면 디지털 돌봄기술을 실제로 도입한 기관은 시설급여기관 11%, 재가급여기관 3.3%에 그쳤다. 규모가 크고 공공성이 강한 기관일수록, 그리고 시설급여일수록 도입률이 높았던 반면, 규모가 작고 민간 비중이 높은 재가기관일수록 도입은 더 어려운 것으로 조사됐다. 지역 간 격차는 크지 않았다.
기기 활용 수준 자체는 낮지 않다. 시설급여기관은 스마트폰·태블릿·PC 활용률이 85%를 넘고, 문서·기록 앱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평균 활용 기간도 6.8년에 이른다. 문제는 이런 ‘기록·업무용 IT’를 넘어선 돌봄로봇·센서 기반 기술로 넘어가는 순간 벽에 부딪힌다는 점이다.
실제 시설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도입된 기술은 요양업무지원(15.9%), 실내 이동지원(12.8%), 기능훈련(10.2%) 정도였고, 배설지원 등은 3% 미만이었다. 재가기관은 전반적으로 도입률이 낮은 가운데 치매케어·식사·영양 같은 일부 영역에서 특정 유형 기관을 중심으로 ‘특화 도입’이 이뤄지는 양상을 보였다.
가장 큰 벽은 ‘돈’, 그다음이 제도와 책임
도입이 더딘 첫 번째 이유는 예상대로 비용이었다. 기관들은 돌봄로봇 도입의 가장 큰 장애 요인으로 비용 부담(41.5%)을 꼽았고, 이어 정보 부족(22.2%), 재정지원 부재(15.1%)를 지목했다.
여기에 제도의 공백이 겹친다. 현행 장기요양보험 체계에서 디지털 돌봄기기는 시설급여의 급여 항목에도, 복지용구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2008년 제도 설계의 틀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셈이어서, 기관이 고가의 장비를 도입할 유인이 약할 수밖에 없다. 결국 시립·구립처럼 국가 재정이 투입된 기관을 중심으로 시범사업 형태로만 운영되고, 인력난에 시달리는 민간·중소형 기관은 정작 기술의 혜택에서 비켜나 있는 구조다.
법적 책임의 불확실성도 무겁게 작용했다. 보고서는 돌봄로봇이 오작동하거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와 관련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장비를 갖춰 놓고도 실제로는 쓰지 않는 사례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사고 시 책임 다툼에 대한 두려움이 기술 활용을 스스로 접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현장이 원하는 것은 ‘대체’가 아니라 ‘부담을 덜어 줄 손’
주목할 대목은 현장이 디지털 돌봄 자체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공인력의 86.0%가 돌봄로봇 도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들이 기대하는 역할은 ‘인력 대체’가 아니었다.
도입이 필요한 이유로는 힘·신체 부담 경감(66.4%)이 가장 많이 꼽혔고, 돌봄자 안전(33.6%)과 어르신 안전(31.8%)이 뒤를 이었다. 실제로 우선 필요한 기술을 물었을 때도 1순위는 이승·자세 변경 보조(42.3%), 2순위는 스스로 이동을 돕는 보조 기술(15.8%), 3순위는 상태·안전 모니터링(12.2%) 순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근력 보조 착용형이나 욕조목욕 보조 등은 상대적으로 필요성이 낮게 평가됐다. 무게가 20㎏에 이르는 착용형 장비처럼 ‘현장에서 바로 쓸 수 없는’ 기술은 도입해도 체감 효과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기대효과 역시 사람을 대신하는 쪽이 아니라 사람을 지키는 쪽에 쏠렸다. 제공인력은 근골격계 질환 감소(69.8%), 업무 강도 완화(65.1%), 근무 안전 향상(54.6%)을 기대했고, 이용자 측면에서는 낙상·사고 예방(52.3%)과 서비스 질 향상(49.0%)을 꼽았다. 반복적이고 신체 부담이 큰 업무를 기술이 보조하면 요양보호사의 직업병을 줄이고, 장기적으로는 돌봄서비스의 질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인식이다.
이 지점에서 연구진은 정책 방향의 재설정을 제언한다. 디지털 돌봄기술의 목표를 ‘돌봄인력 수급난 해소’에 맞추기보다, 여성 고령자가 다수인 제공인력의 노동 부담을 덜고 안전하게, 그리고 질 높게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는 데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보다 제도가 먼저”… 여섯 갈래의 과제
보고서는 우리의 디지털 돌봄 정책이 ‘개발’에는 힘을 쏟으면서도 정작 ‘현장 확산’을 뒷받침할 제도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하며, 다음과 같은 과제를 제시했다.
첫째, 장기요양보험의 수가와 보급 모델을 현실화해야 한다. 고가 장비를 개별 기관이 사들이기는 어려운 만큼, 민간·중소형 기관도 활용할 수 있는 보급 모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둘째, 기관평가 방식을 인력 중심에서 서비스의 질과 효율성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 보유 인력 수가 주요 평가 기준인 현행 체계에서는 장비 도입으로 인력 활용의 효율을 높여도 평가에 반영되지 않아, 기술 도입 유인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제공인력 교육과 교육 인프라를 강화해야 한다. 현장은 이론 강의보다 1:1 현장 코칭과 맞춤형 실습을 선호했다. 신규 양성 과정에 관련 내용을 편입하고 보수교육으로 이어 가는 전 주기적 교육 체계가 필요하다.
넷째, 초기 도입 단계에서 운영·교육을 전담하는 ‘로봇 관리 매니저’ 신설을 검토할 만하다. 제공인력이 가장 부담스러워한 것은 오작동과 학습 부담이었는데, 이를 낮춰 줄 전담 인력이 오히려 기술 확산의 촉매가 될 수 있다.
다섯째, 법·제도의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로봇보험 등 보험 체계를 현실화해, 사고에 대한 불안 때문에 장비를 놀리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
여섯째, 개발자 중심이 아니라 요양보호사와 어르신이 직접 참여하는 리빙랩(Living Lab)을 확대하고, 우선순위가 높은 기술부터 단계적으로 확산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일본·유럽에 비해 리빙랩 기반이 크게 부족한 탓에, 특허 수준은 높아도 상용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현실을 정책적으로 짚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번 조사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 현장은 디지털 돌봄을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열 명 중 아홉 가까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다만 그 기대는 ‘사람을 줄이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덜 다치게 하고 더 잘 돌보게 하는 기술’을 향해 있다. 정책이 개발 지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수가·평가·책임·교육이라는 제도의 빈칸을 메울 때, 비로소 AI 돌봄은 시범사업의 울타리를 넘어 현장의 일상으로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