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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명_다름과 배려 교수 |
장기요양기관을 둘러싼 환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올해 그 변화의 중심에는 ‘장기요양기관 재지정 제도’가 있다. 그간 시범사업과 제도 정비 과정을 거쳐 이제 본격적인 시행의 첫 해를 맞았지만, 현실의 준비상황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이다.
재지정 제도의 핵심은 요양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부실 운영 기관은 걸러내겠다는 데 있다. 정부와 유관기관은 평가 기준과 심사 절차를 마련하고 있으며, 하반기부터 시·도 단위로 본격 심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평가 자료 역시 기존의 기관별 성과지표가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 기관 입장에서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변화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기대와는 다르다. 일부 기관은 예비컨설팅이나 종사자 교육을 준비하고 있지만, 많은 곳이 “제도가 바뀐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정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잘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특히 중소규모 기관일수록 인력과 예산의 한계로 대응이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 기관을 대표해야 할 협회의 움직임도 조용하다. 새로운 제도가 도입될 때, 협회는 실무 매뉴얼을 만들고 기관의 의견을 모아 정부와 조율하는 ‘다리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책 제안이나 교육 사업 등 눈에 띄는 활동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리더십의 공백, 협회 간의 이견, 그리고 아직 미완의 제도라는 불확실성이 활동을 위축시켰을 수 있다. 그럼에도 제도 시행이 현실화된 지금,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다.
재지정 심사를 가볍게 여겼다가는 큰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심사 결과가 기준 이하일 경우 재계약이 거절될 수 있고, 심한 경우에는 지정 취소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는 기관의 존폐를 위협하는 사안이며, 종사자의 고용과 수급자의 권익에도 직결된다. 일부 기관은 심사만 통과하면 끝이라는 안이한 인식을 가지고 있지만, 실상은 그 이후의 개선 여부도 계속해서 평가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 기관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먼저, 정부와 공단이 제공하는 가이드라인을 철저히 파악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기관의 운영 방식과 기록 시스템을 점검하고 정비할 필요가 있다. 또한 종사자의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과 소통도 중요하다. 결국 심사 항목의 상당수는 현장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내부 점검이나 외부 컨설팅을 통해 운영의 허점을 미리 발견해 두는 것도 유익한 대응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윤리와 인권 중심의 운영 체계를 정립해야 한다. 학대 예방, 투명한 보고, 인권 중심의 대응 체계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협회의 역할도 이 시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정보를 수집하고 가공해 기관에 전달하는 플랫폼을 구축하고, 이해하기 쉬운 매뉴얼과 사례집, FAQ를 제작해 보급해야 한다. 또한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지나치게 이상적인 기준이 현실과 충돌하지 않도록 중재해야 한다. 더 나아가 회원 기관들이 함께 대응할 수 있도록 공동 지원 방안을 제시하고, 협회 간 연대를 통해 체계적인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는 지난 수년간 많은 제도 변화와 위기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어르신들을 정성껏 돌보아 왔다. 이번 재지정 제도 역시, 단순히 넘겨야 할 행정 절차가 아니라 장기요양서비스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릴 기회로 삼아야 한다. 기관은 내부의 준비와 감독을, 협회는 정보 공유와 지원을 통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 변화의 파도를 안전하게 넘어설 수 있다.
결국, 제도는 바뀌더라도 돌봄의 진심은 변하지 않는다. 지금 이 시기, 우리 모두가 조금 더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