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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천 호서대학교 특임교수 |
Ring wanderung은 직역하면, 환상방황이다. 등산 백과에 소개된 적도 있고, 산티아고 순례자의 노트에 올라오기도 한다. 돌고 돌아 제 자리에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인생이 다 그렇지, 더 나아질 희망은 원래 없는 거야.’ 끊임없이 무언가를 시도해도 실패를 반복할 때, 우리는 ‘링반데룽’ 현상에 빠지게 된다.
노인장기요양 현장을 표현하는 단어일지 모른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조금 진보하고, 좋아지는 것 같지만, 여전히 맴돌고 있고, 오히려 더 절망으로 느껴진다는 인상을 버릴 수가 없다.
선한 것이 만들어진 것 같지만, 그만큼 웅덩이나 함정 같은 리스크도 증대한다. 분명히 노력하고 있지만, 고통스러운 그림자는 여전히 우리 곁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떨쳐 낼 수가 없다.
제3차 장기요양기본계획과 2025년 시설 평가 항목들을 보면서, 새로운 기자재 같은 물건 몇 개 더 사는 것이,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달려온 우리의 성실함보다 더 크게 보이는 듯한 슬픈 잣대를 마주하게 되었다.
원래 노인복지는 따뜻한 존경과 헌신과 값진 공동체의 스토리가 가득한 곳이었다. 유교 사상이 강한 우리 민족에게는 분명히 누구도 빼거나 손가락질할 수 없는 고유의 복지 영역이었다.
그러나 노인장기요양보험이라는 공적제도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행위와 질책, 평가와 제도로 온통 덮어 버렸다.
바람직한 가치는 경영 기법이라는 말로 변형이 되었고, 복지적 마인드의 희생은 최저임금으로 대체되었다. 70년 역사 속에 양로원의 위상은 부양가족이 없는 복지의 대상에서, 가족에게 버림받은 몇 남지 않은 어르신들의 마지막 움막 같은 느낌도 져버릴 수 없다.
어쩌면, 70년 전 꽃을 피우기 시작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고고한 자만심이 잘못 삐져나와 몹쓸 선민의식이 된 것은 아닌가? 사회복지시설에서 일한다고 하면, ‘참 좋은 일 하신다’라는 낮게 깔린 칭찬에 자신들이 택함을 받았다고 하는 착각에 빠진 것은 아닌가?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해왔던 모든 일에 스스로 좋은 값을 매기고 어깨를 들썩이지는 않았는가?
이미 2008년 이후 존경과 헌신의 바람직한 가치지향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척박한 수가는 매년 최저임금과 효율성 높이려는 저렴한 물건 구매에 신경을 쓰고, 현장에서 일하는 종사자의 나이는 직급 높은 원장이 가장 어린 구조로 가고 있다.
저렇게 하는 것이 노인복지이구나 라며, 지역사회가 부러워하거나, 박수를 치는 모습을 상상하지 말라. 어려운 현실에서도 몸을 구푸려 최선을 다해 고군분투하는 우리는, 노인학대 신고와 행정처분을 두려워하며, 보호자라고 하는 가족들에 의해 갈기갈기 찢기는 이벤트들을 수없이 겪고 있지 않은가.
우리 시설은 다행히 걸리지 않았다고 마음 쓸어가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지는 않은가. ‘노인복지’라는 말로 억지스럽게 치장하는 일도 그만하자.
아직도 희망은 있다. 현실을 직면해야 한다. 소위 시설의 원장쯤 되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별것 아닌 한 가지 이슈에 제각각 생각이 다르다. 아직 그런대로 사는 게 괜찮다고 생각된다면, 자기 소견대로 살 일이다. 그러나, 링반데룽 같은 열악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음을 자각한다면, 위기를 인지하고, 준비해야 한다.
약자의 편에 서서 일하겠노라고 다짐한 인권의식이, 약자들을 양산해 내는 통로에 걸어진 하얀 조화가 되지 않길 바래본다.